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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시집 / 이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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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서명] : -
[저자(한자)] : 李白
[해제] 중국시는 당(唐)나라 때 전성기를 누렸으며 특히 이백(李白)과 두보(杜甫)가 활동했던 시기에 최전성기를 구가했다. 당나라의 시가 중국문학의 꽃이라면 이 둘은 꽃 중의 꽃으로 불려도 전혀 손색이 없는 시인들이었다.
이백(李白)은 자가 태백(太白), 호가 청련거사 (靑蓮居士)로, 중국의 시선(詩仙)으로 일컬어지며, 시성(詩聖)인 두보(杜甫)와 함께 명실상부한 중국 최고의 시인이다. 그는 1,100여 편의 작품을 남겼으며 두보와는 달리 호탕하고 남성적인 면모로 대표된다. 이백은 술을 좋아했던 일필휘지의 시인어었다. 그는 천재적인 재능을 바탕으로 많은 주옥 같은 시를 남겨 하늘에서 인간세상으로 귀양온 신선으로 불렸다. 후대의 한 시인은 그를 두고 ‘말은 천지 밖에서 나온 듯하고 생각은 귀신에게서 나온듯 하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백은 경제적으로 풍족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독서를 좋아했고 15세 무렵에는 시와 문장 창작에도 놓은 기량을 보였다고 한다. 또한 20세 무렵에는 협객들과 사귀었으며 세상을 떠돌아다니며 자유로운 인생을 구가했다. 젊어서부터 도교에 심취한 그는 생활과 시창작에 있어 세속에 아랑곳하지 않는 절대적인 자유를 추구했고 봉건사상을 멸시하는 한편 전통적인 관습에도 전혀 구애됨이 없었다. 이런 그의 성격은 대담한 상상과 과장. 강렬한 서정, 신화와 역사고사에 대한 자유자재의 표현 등의 방식으로 그의 시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이백의 생애는 방랑에서 시작하여 방랑으로 끝났다. 청소년 시절에는 독서와 검술에 정진하고 협객의 무리들과 어울리는 한편 사천성을 비롯한 각지를 방랑하였고 신선이 되려고 도를 닦기도 하였다. 이런 그의 방랑은 아무 것에도 구속되지 않는 정신적인 자유를 찾는 과정에 다름 아니었다.이런 그의 추구는 호방하고 낭만적으로 그의 시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한편 이백은 현실사회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졌고 43세 경에는 당나라 황제 현종의 부름을 받아 관리로 등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자신의 정치적 포부를 전혀 펼칠 수 없는 현실에 절망하게 된 그는 다시 방랑길에 접어들게 된다.
이백은 곧잘 두보와 비교되곤 한다. 두보가 생활이나 시풍에 있어서 항상 현실에 깊이 바탕을 두고 있었다면 이백은 오히려 현실을 초월하고 진정한 자유를 찾아 비상하는 면모를 보여주었다. 이백의 시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협기와 신선과 술이다. 젊은 시절에는 협기가 많았고, 이후 평생에 걸쳐 신선이 주된 관심의 대상이었으며, 술은 생애 전체에 걸쳐 있는 그의 문학과 철학의 원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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