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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 필독 도서

(17회 최우수상) 김채연 - [무정]

2021-11-15조회 342

작성자
문헌정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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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무정을 읽으면서 열 페이지에 한 번씩 책을 내려놓고 싶은 충동 에 시달렸다. 2021년을 살아가는 나에게 이 문학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의 문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무정에 드러나는 형식은 작가를 대변하는 인물로 잘 알려져 있는데, 이 인물은 매우 저열하고 구시대적 가치관을 지니고 있었 다. 형식은 영채도 선형도 제대로 사랑하지 않으면서 자신에게 던져지는 눈 앞의 이익에만 굶주린 들개처럼 달려든다. 자신이 지성인이라 믿어 잠시 고 민하는 체는 하지만 그저 그런 ‘척’으로 그친다. 특히 형식의 순결에 대한 집 착은 역겨운 수준이어서, 나는 몇 번이고 책을 포기하고만 싶었다. 하지만 모든 장편 이야기의 독자가 그러하듯 책을 다 읽어가게 되었을 즈음에는 나 또한 무정의 인물들을 아끼는 마음으로 보게 되었다. 심지어는 그렇게 싫다 고 치를 떨었던 형식에게조차 나름의 애증이 쌓였다. 이 글은 내가 ‘무정’을 어떻게 좋아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기록이다.
무정이란 이야기를 이끄는 주체는 의심할 여지 없이 형식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주인공인 형식보다 영채에게 자꾸만 마음이 갔다. 누군가가 나 에게 무정의 주인공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영채라고 답할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인물은 영채였고 나의 주인공도 영채였다. 영채는 자신이 형식을 사랑한다고 믿는 인물이다. 그는 답답하리만치 형식 과 자신이 결혼하기를 바란다. 형식 때문에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먼 길을 걸 어오고, 기생이 되어서도 정절을 지키고, 심지어는 형식에게 사랑받기 위한 요소였던 순결을 잃었을 때는 자살을 결심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영채가 형 식을 정말 사랑했느냐고 묻는다면, 글쎄...
나는 영채가 형식을 로맨스 적으로 좋아한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영채는 유년 시절 주위에서 형식과 결혼하리라는 말을 듣고 자랐을 것이다. 그 말은 영채의 삶이 평탄히 흘러갔다면 그리 큰 영향을 주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 지만 그의 삶에는 너무나 일찍 큰 불행이 찾아왔고 불행의 반작용처럼 생겨 난 행복에 대한 갈망은 이 말을 ‘형식과 결혼해야 한다’라는 강박으로 빚어 냈다. 처음부터 영채가 형식과의 결혼에 비정상적으로 집착하지는 않았으리 라. 폭력적인 가정에서 학대받던 그는 단지 행복을 위해 고향을 떠나 아버지 를 찾았다. 하지만 행복은 그곳에 없었다. 영채는 가는 길에서 어떤 고생을 하더라도 아버지를 만나면 행복했던 과거의 모습 그대로 인자하게 웃으며 “네가 오느냐.”하고 자신을 맞아줄 때의 행복을 바라며 견뎠다. 그러나 고통 을 견딘 영채에게 찾아온 건 자신 때문에 절망하여 자결한 아비의 시체뿐이 었다. 그렇게 세상에 홀로 덜렁 남겨진 영채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이 바로 형식이었다. 형식은 자신의 아버지가 선택해준 처음이자 마지막 남자이자 유 언이었고, 그래서 유일하게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단 하나의 선 택지로 남았다. 평강공주가 바보 온달에게 시집가기를 마음먹은 순간이었다. 영채는 이러한 불행을 겪으며 형식과 결혼하기를 소망하게 되고 이 소망 때 문에 더 많은 슬픔을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단지 그 정도의 내용만을 담고 있었다면 나는 무정을 좋아하지 않았을뿐더러 책을 끝까지 읽지도 못했을 것이다.
-무정은 영채가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무정은 단순히 영채와 형식의 불행한 삶을 묘사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 행복을 바라기에 무정한 서로에 의해 상처받고 상처 입히지만 결국은 서로의 행복을 바라게 되고, 불행의 틈바구니 안에서도 좋은 사람을 만나 새로운 희망을 찾기도 한다. 나는 무정의 이러한 이야기 전개가 인간이 무엇인가에 관해 말하고 있다고 느꼈다. 무정은 사랑을 좇는 사람을 통해 무 정한 세상 속에서 불행해지고, 무정한 인간들에게 상처를 받지만, 그 상처를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치유할 수 있는 존재도, 결국 인간이라고 말하고 있었 다.
이 메시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영채의 인생이다. 그는 형식과 결혼할 수 없는 몸이 되는, 가장 큰 불행이 계기가 되어 병욱을 만나게 된다. 그리 고 병욱은 “참생활이 열릴까요? 다시 살 수가 있을까요?” 하고 묻는 영채에 게 이제는 제뜻대로 살아가라 말해준다. 나는 이 장면에서 가장 큰 감동을 받았다. 이 장면은 길고 긴 고행길을 걸어온 영채에게 마침내 삶을 살아갈 또 다른 선택지가 주어지는 순간이었다. 겨우 하나의 선택지일 뿐이지만 가 장 확실한 하나의 ‘해피엔딩’으로 나아가도록 만들어줄, 인생의 스위치가 켜 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러한 이야기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무정은 영채가 사람에 의해 죽 고자 하고 사람에 의해 살고자 하게 된 이유를 말하는 하나의 일대기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나는 이 사실이 좋았다. 사람이 사람에 의해 상처받으면 서도 끝내 사람을 사랑하여 행복해지는 이야기를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결말의 문제
이야기의 끝에서 영채를 비롯한 주요 인물들은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픈 일을 찾아내게 된다. 형식은 생물학, 선형은 수학, 병욱과 영채는 음악. 타인 이, 주변의 시선이, 부모가 정해준 인생에서 벗어나 자신이 앞으로 개척해나 갈 인생을 정하는 것이 무정의 결말이다. 이보다 더한 해피엔딩이 어디 있을 까?
누군가는 이런 행복한 결말을 뜬금없고 갑작스러운 것이라 여길지도 모르 겠으나 나는 오히려 이런 결말이기에 마지막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영채의 삶에 찾아온 갑작스러운 불행은 말 그대로 갑작스러웠다. 개연성도 핍진성도 없건만 우리는 우리의 삶에 뜬금없이 찾아오는 불행에 익숙해져 문학작품 속 인물의 불행 또한 쉽게 납득하고 받아들인다. 하지만 행복은 그렇지 않 다. 사람들은 공짜 행복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단 사실을 굳게 믿고 있어 서, 그 행복에 마땅한 노력이나 시련이 존재하길 기대한다. 하지만 개연성 없는 행복은 이미 ‘행운’이라는 말로 우리의 곁에 존재한다. 병욱이 영채에게 손을 내밀었던 것처럼, 기차 안에서조차 갈등하던 네 인물이 우연한 사건으 로 새로운 길을 찾아낸 것처럼. 이유 없는 행복도, 대가를 바라지 않는 인간 의 선의도 이 세상에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이 우리의 삶을 좀 더 나은 길로 이끌고 영채의 삶을 이끈다. 이게 바로 무정을 통해 ‘작가’ 이광수가 우리에 게 던지고자 했던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어둡던 세상이 평생 어두울 것이 아니요, 무정하던 세상이 평생 무정할 것 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 힘으로 밝게 하고 유정하게 하고 즐겁게 하고 굳세 게 할 것이로다.’
무정은 위와 같은 문장을 남기며 이야기를 끝맺는다. 나는 이 문장 끝에서 이야기의 주된 인물이었던 영채, 선형, 병욱, 형식이 마치 연극배우가 관객에 게 인사를 하듯 환하게 웃으며 커튼 뒤로 사라지는 기묘한 광경을 보았다. 모든 소설 속의 주인공들이 그러하듯 그들은 독자가 더는 지켜볼 수 없는 결말의 너머로 나아갈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더 지켜볼 수 없단 사실이 아쉬웠지만, 모두 잘 살아갈 것이란 확신이 들었기에 책을 잘 놓아줄 수 있 었다. 그들은 무정하지 않은 이들을 만나게 되었으니 이제는 행복하게 잘 살 아갈 것이다. 그것이 비록 무정한 세상 속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