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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 필독 도서

(17회 우수상) 김재승 - [춘향전]

2021-11-15조회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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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정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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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도서관 4층 필독도서 코너에서 어떤 책을 읽을지 한참을 서성인다. 두꺼운 책등에 큼지막한 글씨의 익숙한 제목들이 보인다. <자유론>을 꺼내 권리침해와 피해에 대한 기준의 모호함을 문제 삼아 비평하면 멋진 독후감이 한편 나올지도 모른다. 아니면 당장이라도 <종의 기원>을 집어들어 전공과목에서 배운 내용들로 몇 바닥을 술술 써내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뿐일 것이다. 아버지는 ‘글에는 힘이 있다’고 가르쳐주셨다. 당시에는 글의 잠재적인 영향력에 대한 충고로 받아들였는데, 왜 그 순간에 다른 느낌으로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글의 힘에 끌려가지 말고, 네가 손잡이를 쥐고 다루어라. 이런 느낌이었다. 언제부턴가 과제나 시험을 위해 그럴듯한, 오직 글을 위한 글을 쓰면서 스스로에게 품은 의문이 쌓인 탓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런 생각을 하며 손에 한 책을 쥐었고, 마침 처음 읽어보는 것이었다.

부끄럽게도 내가 지난주까지 읽어본 적 없던 이 책의 제목은 <춘향전>이다. 그나마 그네를 타다가 사랑에 빠지고, 탐관오리는 벌을 받고, 행복하게 살았다는 내용은 들어본 정도? 수능 시험에 출제될 가능성이 높다는 작품이나 어려운 문화 이론서는 공부하고 외우면서, 그 유명한 우리나라 고전소설조차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것이다. 책을 대출하기 위해 데스크에 가져갔지만, 필독도서 코너의 책은 빌릴 수 없어 다른 구역에서 다시 찾아야 했다. 내게 암기 대상으로만 여겨졌던 고전소설이었지만, 이번만큼은 다시 꽂아두고도 다른 책에 눈이 가지 않았다. 이번에는 시험범위가 아닌 문학으로서 읽고 싶었다. 미식(味食)하고 눈으로 맛본 대로 표현하고 싶었다.

양반의 아들 이몽룡과 기생의 딸 성춘향의 신분 제약을 넘어선 사랑, 그리고 그 사랑의 힘으로 나쁜 탐관오리를 벌하는 권선징악 이야기. 초등학생인 내 동생도 대략의 내용을 알고 있을 만큼 <춘향전>은 고전소설을 넘어 국민소설이라 할 수 있다. 다양한 이본이 전해지고, 오랜 시간이 지나 현대에 와서도 드라마나 영화, 뮤지컬로 재창조되는 것을 보면 시대에 구애받지 않는 인기를 알 수 있다.

프랑스 학자 뷔퐁은 문학이 사회의 거울이라고 했다. 그리고 역사는 돌고 돈다는 말이 있다. 신분 제도가 폐지되고, 지금까지도 이런 작품이 꾸준히 소비되는 이유는 시간이 흘러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얼마 전, 10년 가까이 공무원이 되기 위해 시험을 보고 있는 일명 ‘공시생’ 남자친구를 계속 지지하고 기다려주는 여성이 쓴 글을 읽었다. 왠지 모르게 그들의 모습에 이몽룡과 성춘향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그리고 뒷이야기를 듣지는 못했지만, 여성의 기다림이 헛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과 남성이 꼭 성공해서 고마워하며 서로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춘향전> 독자의 모습이었다. 시대라는 조명이 변하고, 그에 따라 작품의 모양도 변하지만, 그 뒤에 비치는 그림자의 모습은 사실 같을지도 모른다.
문학이 시대상을 반영한다고 했을 때, ‘시대상’이라고 하면 꼭 옛날에나 적용되는 단어일 것 같지만 지금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정부에 대한 국민의 만족도가 떨어지고, 국정이 혼란스러운 시기일수록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히어로물이 흥행한다는 통계가 있다. 또 주변 친구들이 연애에 목마른 모습을 보이는 것을 뒷받침하듯, 매달 출시되는 노래들은 사랑에 관한 것이고 로맨스물에 대한 인기도 꺾일 줄을 모른다. 이런 예시들을 떠올려보니, 조선시대에 직접 가보지 않았어도 당시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신분 상승과 변함없이 진실한 사랑을 갈구하고 있었는지 체감할 수 있었다. 단순히 시대적 배경을 학습하고 외우는 것과 전혀 달랐다. 마치 같은 재료를
쪘을 때와 구웠을 때의 맛이 다르듯, 이제까지 내가 단순히 한 작품의 인물에 이입했을 때와는 다른 맛을 느끼게 해주었다.

오미자는 한 열매 안에서 단맛, 쓴맛, 신맛, 짠맛, 매운맛의 다섯 가지 맛을 모두 느낄 수 있어 오미자로 불린다고 한다. 시대 이야기에서 벗어나 작품 자체만을 살펴보아도 그 맛이 살아있는 <춘향전> 또한 문학계의 오미자가 아닐까? 그런데 이런 <춘향전>을, 원서에 가까운 글로 읽어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원서의 비유들은 마치 영상을 보는 듯 생동감을 살리며, <춘향전>문장의 절반은 어떤 대상을 수식하는 표현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참신한 묘사들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예를 들어, 이몽룡이 “입(口)과 입(口)을 맞추면 그것이 곧 풍류 려(呂)”라고 묘사한 부분은 대부분의 언어유희가 관념적으로 떠오르는데 비해 글로써 시각적인 유희를
준다는 독특함이 있다. 
또한 <춘향전>은 판소리로부터 나온 소설인 만큼 인물이 구어로 전달하는 부분이 많고, 이 역시 생동감의 주요 공신이다. 
그런데 춘향전을 옮긴 다른 책들 중 대부분은 이런 느낌이 살아있지 못하고, 내가 감탄했던 표현들이나 각 인물의 성격을 구체적으로 머릿속에 그리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던 구어들이 많이 사라져 있었다. 운이 좋게도 내가 읽은 책은 뒤쪽에 완판 84장본을 따로 첨부해줄 정도로 원서가 줄 수 있는 느낌을 하나하나 살리는데 노력을 많이 기울여 부족함이 없었지만, 이런 요소들을 빼놓고 단순히 이야기의 흐름만 살아남아 전해진다는 것이 너무 아까웠다.
우리가 작품을 읽고 명작이라 부르는 이유는 단순히 내용에 있지 않다. 사또에게 붙잡힌 춘향이를 구하고, 용에게 끌려간 공주를 백마 탄 기사가 구해내고, 스파이더맨이 악당으로부터 애인을 구출하는 내용의 흐름은 세기가 지나도 바뀌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매 장면을 묘사하는 표현 방법에 달렸다. 같은 주제로 시작했더라도 서로 다른 표현 방법에 의해 여러 작품들이 나오고, 우리가 그것들을 각각 다른 결과물로 인식할 수 있는 것 역시 표현 방법이 다채로운 덕분이다. 그래서 나는 <춘향전>을 제대로 맛보려면 원서 혹은 원서에 가까운 옮김본을 읽어야 한다고 느꼈다. 비단 <춘향전> 뿐만이 아니라, 다른 고전 소설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토마토를
올리브유에 구우면 목에서 넘기기는 쉬우나 그 영양소가 파괴되는 것처럼, <춘향전>의 온전한 맛을 보는 방법은 단연 날것 그대로 읽는 것이라고 추천하고 싶다.

날것이어서 좋은 것이 있다면, 섞여서 좋은 것도 있다. 잘 지어진 밥, 소고기와 계란, 그리고 나물들은 따로 먹어도 맛있지만 한데 비벼져 어울릴 때 비빔밥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춘향전> 속에 스며든 고사들과 다른 17세기 작품들 대한 이야기이다. 춘향이 그네를 타며 보는 풍경을 “무산의 선녀 구름 타고 양대 위에 내리는 듯” 어른거린다고 한 표현은 초나라의 양왕에 대한 고사이다. 이후 <구운몽>에 등장하는 8선녀의 이름이 그대로 나오기도 한다. 인물 간 대화나 독백에서 <춘향전> 한 페이지를 읽는데 몇 분씩 걸리면서도 답답한 마음 없이 감상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고사들이 완성해주는 장면성과 재미 덕분이었다.
여기서 받을 수 있는 느낌은 마치 현대 작품 속 오마주나 패러디를 볼 때와 비슷하다. 어떻게 보면 오마주보다 훨씬 더 수준 높은 즐거움을 받는다. 단순히 장면이나 표현 방법의 유사성뿐만 아니라, 인물이 처한 상황과 인물 간의 관계까지 고려하여 꼭 들어맞는 고사나 시가 삽입되기 때문이다. 이런 요소를 살피며 세심하게 읽는다면 단순히 줄거리로 접했을 때와는 머릿속에 남길 수 있는 느낌이 확연히 다를 것이다. 진부하게만 들렸던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는 말이 몸소 와 닿았다. 사상문학을 읽을 때만큼이나 다채로운 지식들이 머리를 헤집으며 새 길을 터주는 느낌이었다.
소설 속에서 노비 신분인 방자조차도 오래된 고사들을 인용해 주변 인물들과 대화하는 점을 보면, <춘향전>이라는 소설 자체가 독자들이 고사나 다른 소설들을 배경지식으로 알고 있을 것이라는 가정 하에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생각하면 고사나 한시들, 다른 소설의 인용을 단순한 비유로 읽고 넘어가기엔 너무 아까운 느낌이 든다. “설명이 필요한 농담은 실패한 농담이다”라는 말이 있듯, 인용과 언어유희가 온전한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화자와 청자의 공통된 지식은 중요하다. 책을 읽으며 그 속의 인용으로부터 즐거움을 찾을수록, 고전소설의 비유들을 단순히 암기하고 넘겨버린 과거가 아쉬웠다. <춘향전>뿐만 아니라 다른 고전소설을 읽을
때도, 그 진정한 풍미는 다른 문학 작품과의 유기성에서 우러나온다는 것을 많은 사람이 느꼈으면 좋겠다.

도서관에 앉아 <춘향전>을 읽는 나를 보고 동기들이 웃음과 함께 의아하다는 눈빛을 보인다. 그런 반응이나 표정이 이해되면서도, 한 페이지만 자세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었다. 남들이 모르는 고전소설의 수준 높은 재미를 찾았다는 우월감 같은 것은 절대 아니다. 인상 깊은 식당이 있으면 서로 가보라며 공유하고, 일부 음식점에서는 요리를 더 맛있게 먹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는가. 그러니까 이것은 마치 <춘향전>이라는 맛집의 탐방기이자, 내가 오미자와 비빔밥으로 즐긴 식도락의 후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