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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 필독 도서

(17회 장려상) 김민재 - [설국]

2021-11-15조회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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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정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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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책을 읽지 않아도 누구나가 알 고 있는 도입부. 설국은 이로써 시작한다. 그리고 눈은 미혹의 시작이다. 눈 이 쏟아지는 겨울의 기차에서 역장에게 말을 건네는 요코에게 흥미를 느끼 는 시마무라의 감상과 함께 이야기는 시작된다. 기차의 유리창에 비친 요코 의 모습과 겹치는 등불의 빛, 그 저편으로 살짝 여과되는 밤의 산길이 어우 러진 그 풍경 안에는, 비록 환상임을 알더라도 아름답다고 느끼게하는 무언 가가 있었다. 그리고 이 맥락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이 없는 가 운데 유일하게 느낄 수 있는 작가의 의도 비슷한 것이다. 문체는 간결하면서 소박하지만 동시에 유려하고 매끄럽다. 소박하고 일상미 있는 문체는 일본문 학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지만 배경설정과 어울리는 멋들어진 아름다움은 세상 누구도 쉽사리 따라하기 힘들다. 미사여구로 힘껏 치장하지 않아도 그 곳에 자연스레 나타나는 단아함을 나는 소설 전반에 걸쳐 느낄 수 있었다. 요코와의 첫 만남에서 추정할 수 있듯이, 그녀를 상징하는 가치는 비현실적 인 것, 세태에 물들지 않은 순수함과 이상적인 무언가다. 그리고 그녀는 작 품 내내 인물로써의 조형 보다는 ‘이상’을 나타내는 상징체로써의 실용이 더 부각된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그녀를 사람이 아니라 비생물체, 혹은 동물 로 묘사했더라도 큰 줄기는 그대로였을 것이다. 이 작품에 가지는 불만점으 로 요코의 메타적인 희생을 들 수 있겠다. 요코는 서사의 끝과 시작을 장식 하는 주요 인물임에 틀림 없지만 작중 그녀의 취급은 그다지 좋지 않다. 작 품 전체를 통틀어서 보면 사실 시마무라를 제외한 인물들의 조형은 미완성 이다. 글줄기를 읽으며 우리는 아름다운 배경과 묘사에 파묻히는 것이 가능 하지만, 인물들의 속마음을 읽을 수 없다. 순간순간의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대가로 인물의 조형을 희생했다. 그 중에서도 요코는 더욱 심하다. 요코를 생각하는 시마무라의 속마음은 자주 드러나지만, 정작 그녀가 작중 발산하는 순수함에 비해 존재감과 비중은 작고, 서사의 전개를 위한 고통만이 그녀를 덮친다. 스스로가 표방하는(자신의 의도와는 상관 없이) 가치에 타의로 잡아 먹히는 서사의 제물은 그녀를 말하는 것이다.
시마무라가 여관에 묵으며 만나는 게이샤, 고마코는 작품에서 상당히 큰 비 중을 차지한다. 서양 무용에 관한 잡설을 쓰며 유유히 살아가는 시마무라는 몇 해에 걸쳐 고마코를 만나기 위해 ‘설국’으로 발을 들인다. 그녀는 조신한 듯 보이지만 동시에 거친 면모를 가지고 있고, 동시에 제멋대로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시마무라의 묘사로 그녀의 작중 행적을 유추할 수 없다. 이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변화무쌍하고 대채로운 조형이 될 수도, 일관성이 없어 성의 없는 조형이라는 혹평을 들을 수도 있다. 이는 취향의 영역에 맡기도록 하자.
고마코를 상징하는 가치는 현실적인 것, 세상의 풍파에 물든 타락, 동시에 순수를 갈망하는 의지이다. 고마코는 빚에 의해 게이샤가 되었다. 게이샤라 는 단어의 정확한 뜻을 나는 알 수 없지만 작중행적을 보자면 기생 비스무 리한 것이리라. 그녀는 세상의 추악한 악의에 노출되었지만, 그럼에도 순수 하고자 하는 열망을 버리지 못한다. 그녀의 기원과도 같이 느껴진다. 게이샤 로 종사하면서도 1년에 한 번 방문하는 시마무라에 대한 애정을 잊지못하고 갈구하는 모습, 어린 시절부터 계속하여 쓰는 일기, 샤미센을 키며 즐거워하 는 모습까지. 속세에 찌든 모습이라기엔 적잖이 순수한 면이 있다.
현실에 물들었지만 순수를 갈구하는 모습은 사실 주인공인 시마무라와도 통하는 일면이다. 결혼하여 아이까지 있는 유부남이지만 아직도 여행과 풍류 를 즐기며 현실을 도외시하는 모습, 서양 무용에 관한 글을 쓰지만 한 번도 서양 무용을 실제로 본적은 없고 책에서 얻은 지식에 의존한다는 점, ‘기차 의 유리창에 비친 요코’라는 이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해마다 ‘설국’을 방 문하며 자신도 모르는 무언가를 갈구하는 점. 자석은 같은 극끼리 퉁겨나가 며 서로를 거부하지만, 인간은 동질감이라는 족쇄를 쉬이 벗지 못한다. 두 사람은 비슷하기에 서로를 원한다. 
시마무라와 고마코의 사랑은 한정된 사랑이기에 더욱 큰 가치를 지닌다. 온 천마을에 눈이 덮여 비현실적인 정광을 이루는 ‘설국’이 되었을 때마다 두 사람은 재회하고, 또한 그런 풍경을 벗삼아 잡담을 하고 고마코의 일면을 알 가는 등의 전개로 서로의 마음을 연다. 1년에 한 번이라는 빈도는 이 사랑에 작용하는 가장 중요한 장치다. 발전하는 연심은 나와 타인의 경계를 허물고 이윽고 각자의 삶을 침범한다. 삐끗하면 서로의 생활을 파국으로 치닫게 하 는 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염려는 이 작품에 한해 미연에 방지된 파멸이다. 한정된 기간은 각자의 삶을 제자리에 두고, 짧은 기간이 가져오는 애틋함이 배가되어 둘의 사랑에 개연성을 부여해준다. 사실 이유를 따지지 않더라도 ‘짧은 기간 동안에만 만날 수 있는 정인’이라는 소재에는 고전적인 풍취와 낭만이 있다. 그리고 이 소재는 눈 덮인 산간마을이라는 배경과 맞물 려 가히 환상적이라고 표현할만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이상과 현실이 서로를 유리하지 않고 공존하듯이, 시마무라와 요코, 고마코 를 이어주는 매개체는 설국이다. 그리고 설국은 그자체가 하나의 환상과 다 르지 않다. 시마무라는 고마코가 샤미센을 튕기는 모습을 보며 헛수고라고 말한다. 이에 담긴 조소는 오로지 그 자신을 향하는 것이다. 여행지에서 느 끼는 고마코를 향한 사랑과, 요코를 보며 느끼는 세상을 벗어난 이상, 그 모두가 현실을 살아야 하는 시마무라에게는 언젠가는 끝나고 마는 덧없음 이 다. ‘설국’을 벗어나면 현실을 살아야하는 시마무라는 언제나 그런 종류의 덧 없음에 번뇌하고 갈등한다. 
결국 시마무라 마음속에서 설국의 붕괴는 필연적인 것이다. 이는 외적으로 유키오의 죽음으로 나타난다. 이름에 겨울(유키)이 들어가는 그의 죽음은 그 간 지속되었던 겨울의 해방을 고한다. 유키오의 죽음에도 변하지 않고 자신 의 현실을 살아가는 고마코와 유키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매일 같 이 무덤가에 들르며 자신을 소모하는 유코. 유키오의 존재는 눈과 동격이다. 이상성의 황폐화는 고마코에게 그럼에도 살아가야하는 삶의 극명한 태도를, 요코에게는 인정할 수 없어 현실 그 자체에서 등을 돌리는 부정을 선사하는 동시에 시마무라 마음 속에서 얼어있던 눈 역시 녹인다. 눈이 내리며 시작했 던 서사는 눈이 녹으며 끝난다. 언제나 겨울에 방문했던 설국을 가을의 끝자 락에 방문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서사는 서서히 종말을 고한다. ‘하지만 이러 한 애착은 지미미 한 장만큼의 뚜렷한 형태도 남기지 못할 것이다.’ 이 독백 을 기점으로 시마무라는 서서히 설국이라는 환상에서 헤어나온다. 자신이 아 무리 고마코를 향한 연심을 불태워도 그는 외지인이며 가정을 꾸린 유부남 이다. 그녀를 위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작중 대사처럼 어떠한 행위도 무의미하다. 모든 연정은 눈에 파묻히듯 서서히 그의 마음 한켠에서 침잠할 것이 자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부지 어린아이처럼 이상을 꿈꾸던 그는 한 줌의 미련이 남는 것을 어찌 막을 도리가 없으리라. 그녀를 향한 미련마 저도 최후에 떨쳐내게 되는 것이 결말이다. 시마무라 내면에서 이상을 관장 하던 유코의 죽음과 함께 이야기는 끝나지만, 우리는 나름대로의 추측을 이 어나갈 수 있다. 유코의 죽음은 고마코와 설국을 향한 미혹이 마침내 깨어지 는 것을 의미한다. 
어찌보면 가장 불행한 결말을 맞은 이는 죽음을 맞이한 요코도, 이상이 산 산히 부서져 부정당한 시마무라도 아닌 고마코다. 시점을 달리보면 순수를 쫒던 게이샤에게 일어나는 세 가지의 비극을 시마무라의 시점에서 보여주는 연극이리라. 유키오의 죽음과 선생님의 죽음을 연달아 겪으며 불안정했던 인 격에 또다시 유코의 죽음을 끼얹는 것이다. 심히 피폐하고 악의적이다. 거기 에 열린결말로 뭉뚱그린 결말부 역시, 시마무라와의 이별을 암시한다. 결국 설국은 시마무라에게 있어 미혹의 장소였지만 고마코에게는 악의의 점철이 었다. 순수를 쫒던 그녀는 가장 순수하다고 생각되는 새하얀 눈의 고장이 선 사하는 악의에 짓눌린 가여운 군상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