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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 필독 도서

(17회 장려상) 김연지 - [어둠의 속]

2021-11-15조회 30

작성자
문헌정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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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완독한 후, 나는 책을 잠시 덮고 완전히 눈을 감았다.

닫힌 눈꺼풀로 인해 빛 한 점 들어오지 않자 안내 섬광이 마치 오로라처럼 너울졌다. 분명 눈을 감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야 할 텐데 그것들은 수도 없이 내 시야를 빙빙 돌다가 이내 완전한 암흑이 찾아오자 자취를 감췄다. 종래 나는 잠에 빠져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순간 나는 어디에 있었는가.

그 물음과 함께 나는 까딱도 하지 않을 내 손가락을 움직여보고자 노력하였다. 수도 없이 몸을 뒤틀고자 노력한 끝에 나는 상반신을 들어 올릴 수 있었다. 허나 내 살갗이 닿고 있는 곳은 침대 보 위가 아닌 모래로 추정되는 바닥이었다. 처음에는 보드랍던 것이 점차 내 손을 파고들더니 이내 아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촉각만이 나의 모든 것을 대신할 때 낯설지만 익숙한 말이 들려왔다. 봉 부아이야즈, 몇 번이고 그 단어를 곱씹고 나서야 나는 이것을 어디에서 들었는지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이건 책 속의 말로가 들었던 그 말이다. 그가 펜대를 놀리기 전 들었던 그 말! 그의 이야기가 시작될 서두가 될 수 있다고 단연코 부르짖을 그 말이 내게 속삭여지자 나의 입이 농익은 석류처럼 터지듯 벌어질 때, 누군가가 내 등을 떠밀고 있음을 느꼈다.

잘 다녀오시오, 그것이 바로 알 수 없는 누군가가 말한 단어의 뜻이었다.

암흑이 반전되어 빛이 내 눈꺼풀 사이로 스며들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눈을 떴다. 그렇게 나는 거대한 거울 마주하였다. 누군가는 그것을 두고 거대한 소금물 덩어리라고 익살스럽게 말할 것이며, 혹은 정석적인 표현답게 바다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느낀 것은 하늘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사막이 유리와도 같아 내게 신비로움과 청명함을 가져다줬다면 그것은 그저 거대한 공포 그 자체였다. 빛 한 점도 들어차지 않을 것 같은 넓고 또한 깊은 바다에 비친 나 자신을 보자 내 피부는 오만 간 소스라쳤다.

정확히는 그것은 나이되 내가 아니었다. 그래, 그 순간의 나는 짐승이 된 기분이었다.

처음 거울을 마주했을 때 그것을 타인으로 인식하는 짐승. 그렇기에 나는 바다를 뒤집어엎고 싶었다. 익숙한 것이 달라진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한 두려움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물속의 나는 한없이 비틀어져 있었고, 너울지는 파도 결은 끊임없이 나를 변용하고 있었다. 가족의 막내, 아버지와 어머니의 딸, 대학생이라는 신분, 컴퓨터를 현재 공부하고 있는 내가 모두 뒤틀려지는 것이다.

끝내 남은 것은 그곳에 비치고 있는 것이 정녕 나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심이었다. 경계심만 가득해진 체 그 끝엔 나는 두려움에 떨었다. 인간이라면 할 수 없는 경험, 거울에 비친 자신이 누군지를 몰라 무심코 발버둥을 치게 되는 극도의 불안. 허나 동시에 자신이 아닌 타인으로 비치고 나서야 진정한 탐구가 가능했다.

수없이 성찰의 시간을 가질 땐 느껴볼 수 없는 경험이었다. 탐색의 대상이 결국 나이기에 한없이 지루한 작업이 될 수밖에 없던 것이다. 백번이고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것처럼 지루하기 짝이 없었던 모든 것들이 단숨에 색다름으로 바뀐다. 어디를 어떻게든 뛰어가도, 노력해도 같은 색밖에 보이지 않던 것이 하늘의 거울 아래서 나와 내가 분리되고 나서야 새로운 지평선이 보인다. 하나부터 백까지 열을 올리며 분석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오만함을 짓눌리며 그것이 신의 산물인 것처럼 겸손하게 살펴보고 또한 수없이 생각한다. 내가 아닌 타인이기에 가능한 피부를 뜯는 작업. 그제야 나는 나 자신을 온전히 객체로서 바라볼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조셉 콘래드가 하지 못했던 경험이며 현실의 나 또한 가질 수 없는 깨달음이다.

조셉 콘래드, 그는 제국주의를 무기로 영원히 지지 않을 해를 가진 유럽의 전성기에 아프리카를 여행하고 “어둠의 속”이라는 책을 집필하였다. 지구상에서 어두운 변방에 불과했던 땅에 서서, 말로는 네 명의 선원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콩고로의 항해 속에서 백인 위주의 약탈 행위를 목격하고, 주동자 격인 커츠를 관찰한 여정을 어둠 속에서 비로소 털어놓는 이야기. 작가인 조셉 콘래드는 커츠의 위치에 서있는 유럽인이기도 하고, 또한 말로의 편에 선체 서구적 제국주의를 회의적으로 바라보기도 하며, 혹은 어둠 속에서 나지막이 울려 퍼지는 말로의 이야기를 듣는 선원이 되기도 한다. 그런 그의 책은 서구 제국주의를 비판한 소설이자 자기 탐구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으나 정말로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인간의 내면에 대한 끝없는 고찰로 만들어진 자전적 소설이라는 말과는 어울리지 않게 그는 끝없이 소설에서 결정적인 한계에 부딪힌다. 그의 대변인이라고 할 수 있는 말로는 커츠의 만행을 그의 약혼자에게 말하지 않았으며, 하물며 아프리카와 아프리카 원주민들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조차 행하지 않는다. 마치 방관자의 면모로 그들의 핍박과 약탈을 감상하며 또한 결정적인 물음을 던지지 않는다. 그는 분명 말로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했었다. 우리가 폭력을 가졌다고 자랑할 것은 못 돼. 인간의 힘이란 남이 약하다는 데서 기인하는 우연에 불과한 것이니까. 그러나 그는 우연의 산물인 폭력을 두고 그것이 전복될 수 있을 거라는 상상은 감히 하지 못하는 인간처럼 고개를 숙인다. 마치 회의적인 성찰을 시도하려고 하였으나 너무나도 익숙한 저 자신을 들춰보지 못한 체 지독한 지배 이데올로기에 갇혀 비판의 주제가 흐려진 채로 희뿌연 거울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각별한 꿈을 이뤄 아프리카 콩고 강에서 기선의 선장이 되는 과정에서 그는 말로가 되었으나 또한 말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자신의 환상과 괴리감이 느껴지는 콩고 강의 실체를 두고서도 그는 자신의 이상인 아프리카 대륙을 계몽이라는 이름 아래 주먹을 휘두르는 백인들을 부끄럽게 생각할지언정 정작 자신이 진정 변화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하는 사람처럼 맴돈다.

그렇기에 나는 책을 덮는 이맘쯤에 그리 고한다. 물결에 흐려진 제 모습을 보고서도 인간이란 익숙한 저 자신만을 뽑아 들어 올릴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의문을 부르짖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