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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회 장려상) 조희연 - [제3의 물결]

2021-11-15조회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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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정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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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실제로 변화를 일으키는 것보단 항상 쉽다.’ 『제3의 물결』의 저자인 ‘엘빈 토플러’가 세상을 떠나기 전, 사람들에게 어떠한 대가도 없이 남긴 유산과 같은 말이다. 그의 말처럼, 지금부터 할 ‘말’, 과 ‘이야기’는 스스로 혁명에 가담하여 충돌하는 일보다는 쉬울 것이다. 하지만 제3의 물결은 어느새 흘러가고 있고, 어쩌면 이제 제4의 물결을 표류할지 모르는 스스로에겐 지도나 나침반과 같은 지식이 필요하다. 서문을 연 위의 말이 그의 유산이라면 『제3의 물결』은 그 유산을 모아둔 저장고이다. 지금부터 『제3의 물결』을 통해 엘빈 토플러가 바라본 혁명들의 족적을 따라가며, 끝에는 앞선 미래를 바라보고자 한다. 
 혁명의 과거를 들여다보면 가장 깊숙이에는 농경이 있다. 제1의 물결에서 이른바 문명인들은 토지로 경제, 생활, 문화, 가족 및 정치의 토대를 이뤘다. 그 아래에서 분업에 따른 권력의 등장은 필수적이었다. 다양한 곳에 계급사회가 출연했지만, 그 문명이 동일하게 나아가지는 않았다. 해양 중심의 상업 문화, 중앙 집권화가 이뤄진 나라 등 각자의 특수한 상황에 따른 자세를 갖췄다. 토플러가 시대를 나눈 세 개의 물결 중, 제1의 물결은 비교적 오랜 시간을 차지한다. 시간의 축적만큼 사회의 제도나 세력은 부피를 늘려갔다. 그렇기에 제2의 물결의 완전한 등장은 쉽지 않았다. 제1의 물결 세력과 제2의 물결 세력은 계속해서 충돌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전쟁과 여러 논쟁을 거쳐 사람들은 산업화, 제2의 물결을 마주한다. 판매와 구매의 형태가 잡히고, 재산의 규모는 농경사회 때보다 크기를 키웠다. 그리고 산업 혁명은 인간에게 지배자와 피지배자라는 개념을 각인시켰다. 이는 지금까지도 사회에 유리와 같은 투명한 벽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제2의 물결에 의한 노동의 역할 분담은 전쟁과 자연의 희생을 만들었고, 누군가의 가난은 계속해서 뿌리를 내려갔다. 인간은 에너지를 통해 자신의 미약한 힘을 극도로 강화했고, 이를 위해 조직과 기계 앞에서 일평생을 보냈다. 개인은 여기서 그 영향력을 서서히 잃어갔다. 산업화는 인간을 경제, 정치와 같은 ‘소속’에 몸을 던지게 하고, 사람을 이의 일부로 녹아들게 하였다. 여기서 산업화의 사람은 자신의 개인적 영역을 확대하는 의욕을 잃는다. 
 지금의 사회인, 직장인들은 주체성의 회복을 위해 문화를 접하고, 조직 생활에서 잃은 개인의 조각을 찾기 위해 문명, 자아와 인격 등을 탐구한다. 하지만 제2의 물결 속 주체성의 붕괴를, 우린 단순히 과거로 남겨둘 수 있는가. 제3의 물결이 대량화와 핵가족화를 넘어 ‘물건의 제조’보다는 ‘지식’에 초점을 두었지만, 제2의 물결 속 개인을 잃은 사람들의 모습은 지금까지도 어딘가 익숙하다. 2차 산업 혁명에 중요하게 작용한 ‘물건의 대량화’는 그 수량이 많은 자리를 차지했다면, 제3차 물결의 종지부를 찍어가고 있는 지금은 ‘지식’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그리고 여기서 사람은 마치 대체되는 것처럼 보인다. 지식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 변혁은 누군가에게는 조용하게, 또 누군가에게는 그 눈앞에서 흐른다. 이를 주도하고,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에겐 ‘필요’라는 딱지가 붙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은 ‘도태’라는 딱지를 받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체성을 찾는 일은 그 중요성의 무게를 불려간다. 하지만 소위 도태되지 않기 위해, 결국, 타인의 뒷모습을 쫓고 경쟁에 휩쓸리다 보면 자신이 아니더라도 이 자리를 대신할 누군가 존재한다는 생각을 한다. 여기서 언젠가 개인의 영역을 확대하는 것에 의욕을 잃었던 누군가처럼, 지금의 우리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주체성을 잃는다. 자신의 한계를 규정하고, 사회에서의 생존을 위해 개인을 버린다.
 이처럼 서로 무관해 보이는 일들도 그 안을 들여다보면 닮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거와 현재가 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미래는 역사를 기초로 한다. 이는 역사를 기반으로 지금이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변하지 않을 사실이 된다. 역사는 곧 미래를 바라볼 시각에 중요한 단서로 반영된다. 『제3의 물결』이 이러한 사실의 예시가 된다 생각한다. 엘빈 토플러가 미래를 예상한 논리는, 마치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의 시선으로 책을 쓴 것처럼 보인다. 책을 기술하던 시절의 그는 과거에 살고 있는데도 말이다. 『제3의 물결』은 예언서는 아니다. 하지만 역사의 자료를 수집하고 치밀하게 분석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미래를 통찰할 능력을 키워준다.
 이는 제2의 물결을 통해 제3의 물결을 유추하는 것 또한 가능하다는 점을 내포한다. 실제로 제2의 물결에서의 주체성 상실은 제3의 물결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영화와 공연과 같은 문화 활동을 이끌었다. 더 나아가 지금의 사람들은 자신의 내적 세계에 관심을 두고, 자아와 인격 향상을 노력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자신과 타인의 개인차를 인정한다. 문명의 색다름을 수용하고, 인종적, 지역적, 종교적 다양성을 억압하지 않으려 한다.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오히려 남들과 유사하다는 점이 단점이 되기도 한다. 제2의 물결과는 상반된 현상이다. 하지만 제2의 물결에서 떠오른 문제점과 그 상황을 놓고 볼 때 마땅한 결과라 볼 수 있다.
 ‘에너지’ 또한 마찬가지다. 제2의 물결에서 에너지를 통해 사람은 그 능력을 극대화하고, 이를 위한 자연의 훼손을 당연한 권리인 것처럼 굴었다는 점과, ‘에너지’의 한정적인 면을 생각한다면 제3의 물결이 어떻게 흐를지 유추할 수 있다. 자연을 오염시키지 않고, 계속 공급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가 부상할 것이란 걸 말이다. 석탄 산업, 섬유 산업이 주를 이루던 제2의 물결만 보더라도 사용하는 원료와 에너지가 한정적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에너지의 문제는 단순히 물량만이 아니다. 구조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는 제3의 물결에서도 적용된다. 필요한 에너지를 소유하고 있는 자들은 자연스럽게 재력을 차지한다. 이를 목적으로 한 투쟁이 불가피하다. 그렇지만 이전의 전쟁, 자연의 훼손 등에 불필요한 희생을 요구하는 것과는 그 양상이 다르다. 에너지 소유에 대한 욕심은 곧 ‘공급’을 조명받게 한다. 에너지를 사용하던 구조의 변화를 이끌고, 더 나아가서는 에너지를 생산하는데 사용하는 ‘기술’을 돌아본다. 기술을 평가하는 기준이 달라진다. 제3의 물결을 살아가는 세력은 에너지가 고갈되지 않길 바라며, 기술 이에 맞춰 한정된 에너지가 아닌 넓은 범위의 에너지를 끌어들인다.
 노동에 대한 변화도 마찬가지이다. 효율을 중시하면서 개인에게 바라는 기대치는 높아진다. 양질의 서비스와 생활을 원하는 사람이 늘어간다. 새로운 방식과 창의적인 생각을 추구한다. 이를 제공하기 위해서 참신한 생각과 기발한 구상에 대한 욕심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에 따라, 또 다른 면에서는 단순 노동직 종사자들의 입지가 좁아진다. 이런 점들이 노동 시장의 문제로 떠오른다. 하지만 그 입지는 첨단기술의 상승세와 함께 더욱 좁아질 것이다. 간단하고 반복되는 일을 하는 노동자는 점차 그 위치를 찾기 힘들다.
 토플러는 사람에 따라 변화의 속도에 다른 적응력을 가진다고 말한다. 위 같은 노동의 문제도 변화를 대하는 속도 차이에 의해 발생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러한 속도 차이의 근간은 어떤 변화에서 생겨났을까. 스스로가 내린 답은 ‘정보화 시대’에 있다. 정보화 시대의 도래와 함께 ‘지식’과 ‘변화’에 대한 요구도 점차 늘어갔다. 디지털 기기의 보편화와 휴대성 증가가 이런 변화에 불을 붙인다. 디지털 기기의 발전은 인터넷 세계와 사람들 사이에 간편한 연결을 제공했다. 사람들 사이에 정보, 지식의 전달을 빠르게 만들었으며, 업무의 속도를 늘리고 공간의 제약을 줄였다. 과거와 비교한다면, 모든 시간이 급변기처럼 느껴진다. 사람은 어느샌가 거듭된 발전에 적응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부적응자로 나뉘었다. 토플러는 부적응은 곧 큰 손실로 이어진다고 강조한다.
 ‘적응’은 토플러가 제시한 미래를 바라볼 지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개인의 상태와 정도에 따라 시간의 차이는 생기겠지만, 종국에는 대부분이 변화에 적응한다. 그렇게 새로운 시대는 안착한다. 단, 바뀐 시대를 개척하거나, 또는 중심에 서는 사람은 남들보다 앞서 적응한 사람이다. 이는 부적응자가 가지는 손실 중 하나이다. 앞서 말했듯이 토플러는 예언가도 아니고, 『제3의 물결』을 읽는다고 미래를 아는 것도 아니다. 토플러는 책 속에 몇 가지 생각들과 낡아가는 산업 문명을 체계적으로 정리해두었다. 어떻게 지금의 혁명을 이룩하였는지를 알아가며 미래를 가늠해 볼 수는 있지만, 책 속에 제4의 물결 속 세상이 있진 않다. 제3의 물결을 넘어 새로운 물결의 시대를 맞게 되는 이는 토플러가 아닌 지금의 사람들이다.
 누구나 부적응자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주변을 포함한 많은 것들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직접 변화의 결과를 목도하려 한다. 하지만 관심만으로는 완전한 변화의 적응이 가능하지 않다. 새로운 것에 대한 올바른 판단과 통찰력 그리고 수용의 마음 또한 갖춰야 한다. 모든 혁명에 대해, 혁명의 시작점이 어딘지는 확고한 대답을 내놓을 수 없다. 토플러가 시대의 변화를 3가지 물결로 표현했듯이, 지금도 변화는 흐른다. 물결을 헤쳐나갈 살아있는 물고기가 될 것인지, 아니면 오로지 물결에 따라 몸을 맡기는 죽은 물고기처럼 살 것인지는 자신에게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