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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회 최우수상) 박창은 - [자유론]

2020-11-17조회 3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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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정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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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터넷 기사의 댓글이든 지인과의 평범한 대화든 일상생활 속에서 종교의 자유, 표현의 자유와 같이 ‘○○의 자유’라는 표현을 심심치 않게 보고 들을 수 있다. 이는 오늘날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자유주의의 기본 원리와 개인의 자유 및 권리에 대한 개념이 내재화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는 여전히 부족한 점도 존재한다고 본다. 바로 자유의 개념을 잘못 이해하여 개인의 자유를 무한정 허용되는 절대적인 가치로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정치학도로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이론에 관심이 매우 많다. 최근에 학과 교수님의 추천으로 읽게 된 故 박세일 교수님의 ‘공동체 자유주의’의 영향 때문이었을까, ‘자유주의 가치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민주주의에 대한 우려의 원인, 미래지향적 자유민주주의의 모습’과 같은 내용을 주제로 공부하며, 자유와 방종(放縱)은 한 끗 차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이와 관련하여 정치학에서 다뤄지는 자유 개념과 민주 개념의 관계성에 관해 심도 있게 고민을 하고 있었던 상황에서,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이 자유의 진정한 가치에 관해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는 사실은 필자로 하여금 이 책을 읽도록 하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자유론은 총 5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은 차례로 ▲ 시민적 자유와 사회적 자유, ▲ 사상과 토론의 자유, ▲ 복리의 한 요소로서 개성, ▲ 개인에 대한 사회의 권위 및 한계, ▲ 적용에 관해 다루고 있다. A4 4매 이내로 분량이 제한돼있는 관계로, 전체적인 줄거리를 요약·제시하고 이후 감상내용을 서술하기보다는, 인상깊게 읽은 부분과 이에 대한 필자의 의견을 중심으로 감상내용을 서술하려 한다.
 
밀은, 특정 행위가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개인의 자유는 제한될 수 없다고 말한다. A가 보기에 B의 행위가 옳지 않더라도 피해가 없다면 제한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의 자유’는 오늘날 매우 쉽게 보고 들을 수 있는 표현이다. 인터넷 기사에서 악플러들이 표현의 자유를 언급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으며, 코로나 사태에 다수의 종교인이 종교의 자유를 외치는 모습 또한 볼 수 있었다.
우리 사회는 자유의 개념을 자주 혼동한다. 사회 전반에 걸쳐 ‘프랑스 합리주의 전통의 자유주의’에 기초하여 자유를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쉽게 말해, 무엇을 할 수 있는 ‘적극적 자유’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존재한다. 바로 원하는 것을 하는 권리로서의 자유가 ‘타인의 자유와 충돌’한다는 것이다. 자유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영국 경험주의 전통 자유주의’에 기초하여 개인의 자유를 의미하는 ‘소극적 자유’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것이 밀이 주장한 자유의 개념이고, 우리가 논하는 자유주의(Liberalism)의 자유 개념에 부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할 때, 다원주의에 기초한 자유주의에서 자유가 매우 중요한 것은 맞지만 ‘무한대로 허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공동체 속에서 다른 구성원들과 함께 살아가며 영위되어야 하는 가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쉽게 말해, 자유가 ‘방종’이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평소 인터넷 댓글을 보며, 특히 이번 코로나 사태를 경험하며 우리 사회가 자유를 잘못 이해하고 있고, 방종에 빠져있다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개인에게 자기 의사를 표현할 권리가 있는 것은 맞으나, 타인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표현을 서슴없이 하는 것을 허락한 것은 아니다. 신앙을 위해 예배를 드릴 자유가 있는 것은 맞으나, 이것은 주변 사회에 피해를 미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부여된 자유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밀의 주장과 같이 특정 행위가 타인에게 피해를 끼친다면 그 자유는 제한될 수 있는 것이다. 헌법 37조 2항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지난 5월 13일, 독일 공영방송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코로나 추적 체계가 지나치게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강경화 장관이 ‘사생활은 중요한 인권이나 절대적인 권리는 아니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제한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사생활 보호와 대중 안전의 균형 필요성’을 언급한 것은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밀은 자유로운 토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대립하는 두 의견의 충돌이 열성적인 당파주의자들이 아닌 방관자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두 의견을 모두 들어볼 필요성이 있음을 역설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2009년 션스타인의 연구는 매우 주목할 만하다. 그는 집단 극단화 현상(Group Polarization) 개념을 제시했는데, 이에 따르면 사람들은 혼자 있을 때는 절대로 하지 않을 일을 본인과 같은 생각을 가진 집단에 들어가게 될 경우 의견 및 정보의 배타적 습득과 교환을 경험하게 되고 이로 인해 자기 확증을 거쳐 극단적인 태도를 갖게 된다. 쉽게 말해, 본인과 다른 견해는 처음부터 배제되기 때문에 다양한 의견이 논의되지 못하고 처음부터 매우 제한된·편향된 견해가 논의된다는 것이다.
올해 3월 케이스탯리서치(Kstat Report)가 진행한『‘국민 갈등 의식’ 심층 분석』결과는 매우 흥미롭다. 한국 사회의 갈등 정도를 평가한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 86%가 한국 사회는 분열되어 있다고 보았고, 국민의 93%가 한국 사회 갈등은 심각하다고 답변하였다. 이에 대한 원인으로, 국민의 57%가 “자신과 반대되는 의견을 가지 사람과 거의 대화를 하지 않고, 정치적 입장이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린다”고 답하며 한국 사회를 ‘닫힌 사회’로 평가하였다. 션스타인의 집단 극단화 현상을 바탕으로 조사 결과를 해석한다면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민주주의 체제하에서 여론을 형성하는 주도층은 정치 분야에 관심이 많은 상위 10%의 사람들이고, 앞서 제시한 ‘집단 극단화 현상’과 이로 인한 ‘분열된 한국 사회’의 조사 결과를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면, 밀이 제시한 자유로운 토론의 중요성을 쉽게 알 수 있다.
한국 사회에는 ‘종교, 정치와 관련된 이야기는 피해야 한다’라는 분위기가 은연중에 존재한다. 민감한 주제인 만큼 조심하자는 의도에서 비롯된 분위기일 것이다. 필자 또한 부모님으로부터 그렇게 교육을 받았고 그 의도에 공감했으며, 실제로도 그러한 대화는 조심스레 피해왔다. 하지만 자유론을 계기로 생각을 달리하게 됐다. 2019년 독일의 뉴스 편집장 요헨 비그너에 의해 진행된 ‘유럽 토크’를 본 적이 있다. 유럽 토크는 그동안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대립되는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1:1로 만나 정치적 논쟁을 벌이는 프로그램이다. 이러한 논쟁이 극단적 갈등을 유발할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프로그램 결과 참가자들은 논쟁을 통해 ▲ 대화를 즐겼고(90%), ▲ 상대의 태도에서 무엇인가 배웠으며(67%), ▲ 서로의 관점이 수립되었다(60%) 고 답했다. 가장 놀라운 점은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라는 것이었다. 필자는 앞선 사례와 같은 사회적 분위기가 한국에 정착할 필요가 있으며, 이러한 이유로 기존의 사회적 통념-종교, 정치에 관한 대화는 자제해야 한다는-을 깨고 자유롭게, 건전하게 토론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을 달리하게 된 것이다.
 
밀은, 복리의 한 요소로서 개성을 강조했다. 개인의 자유에서 비롯되는 창조물과 이로 인한 인간 사회의 발전은 궁극적으로 모두의 풍요로 이어진다고 제시한 것이다. 1948년 미국의 영향 속에 출범한 대한민국은 처음부터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규정됐다. 일제 치하의 수탈에 이어 한국 전쟁으로 황폐화된 한국에서, 주요 지도층은 반공주의를 자유민주주의와 결부시켜 권위주의적 체제를 수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가 공동체의 가치로 ‘국가안보’와 ‘경제발전’을 채택하였으며, 이러한 국가 주도로 인해 한국은 빠른 속도로 경제 성장과 국가 발전을 경험했다. 이는 권위주의 체제의 효과와 사회 구성원들의 생존·안전에 관한 욕구가 결합해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과거와 같은 국가 주도의 발전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국가가 과거만큼 효율성을 갖지 못할 뿐만 아니라 국가를 둘러싼 외부 환경도 크게 변화했기 때문이다. 즉, 기업 등의 민간 영역이 국가보다 유능하고 효율적인 상황이 된 것이다. 오늘날 한국이 선진국 반열에서 국제사회를 리드하는 입장이 되었기 때문에 민간 영역에서의 자율성과 창의성은 더욱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개인의 자유에서 비롯되는 자율성과 창의성이 국가 발전의 동력이 된다고 할 수 있겠다. 자유는 사회 진보에 필수불가결한 독창성과 창조성의 조건이므로, 사회의 활력을 유지하고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구성원 개개인의 역량을 자유롭게 발휘할 수 있도록 보장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를 고려할 때, 현대사회에서 개인의 자유는 자기실현의 조건으로서 중요할 뿐만 아니라, 국가 발전의 동력으로서 매우 중요한 조건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대한민국이 채택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라는 체제는 개인 구성원의 정치 참여를 통해 개인의 자유를 더욱 효과적으로 보호하고 보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하에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혼합한 체제이다. 자유주의의 궁극적인 세계가 민주주의까지 포함해야 함을, 즉 자유인에게 민주적 권리는 연장선상에 있어야 하는 것임을 고려할 때, 샨탈 무페가 ‘단 하나의 일반의지를 지닌 통일되고 동질적인 실체로서의 국민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현대사회에서는 지배자와 피지배자 간의 일체성에 입각하는 민주적 논리 하나만으로는 인권의 존중을 보장할 수 없다’고 지적했듯이,정치의 핵심 가치이자 목표로서 ‘개인의 자유’라는 개념을 올바르게 이해해야 민주주의의 올바른 작동을 도모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할 수 있겠다.
자유주의는 인간이 이성적 존재임을 전제로 하지만, 손전등을 통해 수 킬로미터가 아닌 수 미터만 비출 수 있듯, 인간의 이성을 제한적으로 신뢰하는 것이다. 필자의 가치관은 자유주의 사상과 그 맥락을 같이 한다. 인간은 이성적 사고가 가능하지만, 감성의 영향을 받는 불완전한 존재이며, 교육의 정도에 따라 이성의 발현 정도에도 차이가 존재한다. 즉, 고등 교육을 받은 지식인과 초등 교육만을 이수한 일반인의 이성적 판단 사이에는 질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성적 판단의 질적 차이가 존재하는 가운데 민주적 결정 방식을 도입하게 되면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첫째, 전문 지식의 부족으로 인해 정확하지 않은 정보에도 일반 시민의 판단 능력은 흐려진다. 이는 정책 결정에 많은 시간을 소요하는 원인이 된다. 둘째, 전문성 부족으로 인해 정책에 대한 논의 수준이 낮아진다. 이는 정책의 질적 하락으로 직결된다. 셋째, 작은 선동에도 쉽게 흔들린다. 이로 인해 여론이 자주 바뀌고 선동을 해명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모된다.
오늘날 많은 국가가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매우 유용하며 효과적인 체제로, 현재 이를 대체할 수 없는 이론이 없다. 하지만 민주주의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 첫째, 민주주의는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의 결과를 확신하지 못한다. 의사결정 과정이 타 정치체제에 비해 우수하다고는 하지만, 이는 결과를 외면하는 것일 뿐이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6월, 9월 모의고사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더라도, 수능에서 그렇지 못했다면 대학 입시에는 실패한다. 국가 의사결정도 이와 같다. 평화와 자유를 지킨 의사결정 과정도 결과가 나쁘다면 정책은 실패한 것이다. 둘째, 진정한 의미의 지도력이 존재할 수 없다. 민주주의는 ‘수 싸움’으로, 다수를 확보하기 위해 대중의 이해와 요구를 수용하고 국가 정책도 그들 수준에 맞춰야 한다. 듣기 거북하거나 불쾌한 진실은 회피할 수밖에 없다. 정치인은 지도력이 아닌 평판에 의존하게 되며, 진정한 지도자는 나올 수 없다. 셋째, 권위/질서와의 양립이 어렵다. 개인은 자신의 능력과 관계없이 동등한 권리·자유를 요구한다. 단기적으로 보면 매력적이나, 장기적으로 보면 매우 위험하다. 작은 구속에 분개하며 방임, 방종이 확대되고 이로 인해 민주주의는 몰락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과거 존 스튜어트 밀과 같은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이 전면적인 보통 선서권 실시와 관련하여 다수의 전제 가능성을 경계하며, 민중들이 합리적·도덕적 인간이라는 자유주의의 개인 개념에 적합한지 그 여부를 따지고, 민주주의에 대해 우려를 표하며 국민의 의식 수준 함양을 위한 의무교육의 중요성·필요성을 강조했다는 사실은, 자유주의의 실천을 위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와 자유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비단 한국 사회 뿐만 아니라 안정적 민주주의 국가로 평가받았음에도 민주주의의 후퇴를 경험하고 있는 미국과 영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많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