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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 필독 도서

(16회 장려상) 이창신 - [차라투스트라와의 동행]

2020-11-17조회 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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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정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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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부터 빌보드 차트를 매주 소개해왔는데 우리나라 아티스트가 싱글 차트 1위를 하는 걸 소개하다니, 이제는 여한이 없다.”, “기특하고 고맙다.”
30년 동안 라디오 DJ를 해온 배철수가 라디오 프로그램에 BTS를 초대했을 때 했던 말이다.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킨 BTS의 신곡의 이름은 ‘다이너마이트(dynamite)’ 다이너마이트는 필자가 읽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집필한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스스로를 비유한 대상이기도 하다. ‘신은 죽었다.’는 말로 유명한 니체의 사상은 우상을 파괴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어 새로운 차원의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지평을 열어준 하나의 폭발물로 모름지기 자평할 만 하다. 이 다이너마이트로 인해 황폐화된 대지에 삶의 지침을 계시하기 위해 니체의 페르소나인 차라투스트라가 등장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서른 살에 산으로 들어가 10년 동안 고독 속에서 세계의 이치를 깨우친다. 그리고 이 책의 시작과 동시에 가르침을 위해 하산한다. 즉 차라투스트라가 산 속에서 있었던 10년은 이 책을 집필하기 전 니체가 살아왔던 삶과 같고, ‘권력의지’와 ‘영원회귀’로 대표되는 니체의 철학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차라투스트라의 모습으로 설파되고 있다. 니체의 다양한 견해로 엮인 이 책을 어떻게 일목요연하면서도 흥미롭게 이 글에 담을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다가 하나의 망상에 다다랐다. BTS가 신곡 ‘다이너마이트’를 공개하며 스스로 니체임을 자처한다고 가정하면 작년에 출시한 미니앨범 ‘MAP OF THE SOUL : PERSONA’는 차라투스트라에 빗대어도 되지 않을까? 이 앨범의 제목이자 정체성이 바로 ‘페르소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앨범의 수록곡들을 건너며 ‘나’를 찾는 여정에 차라투스트라를 동행하려 한다. 참고로 필자는 BTS 추종자가 아님을 미리 밝힌다. 단지 대중가요와 철학의 연관이 지닌 묘한 매력이 더욱 많은 ‘나’에게 영감이 되어주길 기대하는 바다.
 
Intro : Persona
‘나는 누구인가.’ 첫 수록곡은 페르소나(가면)를 두고 ‘내가 정의하는 나’와 ‘남이 정의하는 나’ 사이에서 이 물음에 답을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나는 출사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 물음에 해답을 제시해줄 수 있는 세 단계 변화 과정을 알려주었다. 이 과정은 내 자신이 어느 단계에 있는지 파악할 수 있고, 또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길을 제시해주고 있다.
첫 번째는 낙타의 단계이다. 낙타는 짐을 지고 묵묵히 요구하는 대로 나아가는 존재이다. 니체는 중력을 ‘악’이라고 보았는데, 낙타는 사막이라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중력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짐, 즉 운명을 감내한다. 각자에게는 각기 다른 이유로 느끼는 각기 다른 무게의 짐이 있다. 그 짐이 경제적이든, 심리적이든, 병리학적이든 내 자유에 족쇄가 되는 이런 짐들은 사실 안고가야 하는 우리의 운명이다. 왜냐하면 ‘너는 해야 한다.’는 메시지는 내 의지와는 관련이 없지만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메시지에 ‘나는 원한다.’로 대항할 수 있는 용기. 바로 다음 단계인 사자의 단계이다. 사자는 자유정신을 상징한다. 기존의 가치와 관습, 관계까지도 파괴할 줄 안다. 각종 매체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사람들이 보이곤 하는데, 낙타 단계를 거친 사람과 아닌 사람의 목소리에는 응축된 힘이 다르다. 만약 자신이 타인의 욕구를 우선시하고 ‘남이 정의하는 나’를 두려워한다면 사자로의 도약이 필요한 때다.
자율적인 사자의 단계에서도 아직 도달해야 할 단계가 남아있다. 바로 순진함과 망각을 대표하는 어린아이의 단계이다. 낙타와 사자의 단계를 걸치면 끝없는 변화에 불안해질 수 있다. 이때야말로 주위 환경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동심과 새로운 시작을 위한 망각을 갖추어야 할 때다. 낙타와 사자 단계를 걸쳐 어린아이에 도달하면 내 존재와 삶 자체에 긍정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떤 단계인지 자문해보자.
 
작은 것들을 위한 시
이 곡은 작고 소박한 사랑에 즐거움을 느끼고, 그것을 지키는 것이 진짜 사랑이라는 내용을 담았다. 비슷한 맥락의 ‘소확행’이라는 신조어도 있다. 하지만 차라투스트라는 이와 정확히 반대되는 개념인‘초인’을 가르치기 위해 속세에 들어선 인물이다. 초인은 일상적인 가치를 폄훼하고 형이상학적 가치를 부정함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자이다. 즉 일상과 우상을 파괴하고 스스로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넘어서고 창조하는 자라고 정의할 수 있다. 차라투스트라는 심지어 초인이 되려 하지 않는 자는 ‘말종(末種) 인간’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두 가지의 실존 양식, ‘초인’과 ‘말종 인간’은 둘 다 존중되어야 할 삶의 양식이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도 두 양식은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절대적인 선이 없는 상호보완적 성격을 띠고 있다. 니체 본인도 사실 리하르트 바그너에 대한 열성적인 사랑을 내비쳤고, 루 살로메를 향해 소박하고 서툰 애정표현을 하기도 했다. 현대에 들어서 취업-창업, 가정-대업 등의 흥미로운 토론거리들도 이 두 양식을 미시적으로 해석한 결과가 아닐까? 우리는 어떤 삶의 양식을 추구하는가?
 
소우주
이 곡의 제목 ‘소(小)우주’는 사람 한 명 한 명이 그 안에 자신만의 광활한 우주를 담고 있다는 뜻으로 표현되었다. 미국의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에서 전자와 같은 소립자도 낮은 계층의 그 나름의 닫힌 우주일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제시하기도 했다. 이 아이디어에 따르면 우주가 하나의 계층 구조일 수도 있는 것이다. 반면 차라투스트라의 우주관은 현대 과학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영원회귀 사상에서 어렵사리 엿볼 수 있을 뿐이다. ‘영원회귀’는 시간은 무한하므로 언젠가는 지금과 똑같은 삶으로 회귀하고, 이 굴레는 영원히 지속된다는 사상이다. 우주가 아름다운 이유는 심미적이기도 하지만 무한함과 신비로움에 대한 경외에서 비롯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모두 하나의 가능성으로 존재할 수 있다. 영원회귀 사상도 같은 맥락이다. 다시 태어나도 이와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면 지금 이 순간이 내 삶을 바꾸는 기회이자 가능성이다. 이 사상에 대한 학자들의 해석은 다양하지만 능동적인 삶을 살라는 메시지를 뚜렷하게 내포하고 있다는 점은 자명하다.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는 이 순간, ‘나’를 찾기 위해 능동적인 발걸음을 씩씩하게 디뎌보자.
 
Make It Right
이 곡은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BTS의 선언이다. 자기를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팬들이라는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우상이 파괴된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초인을 내세웠는데, 초인에게 필요한 사상으로 이번에는 ‘권력의지’가 등장한다. 여기서의 ‘권력’은 용어 그대로 집단과 집단 사이의 세력을 나타내는 말이 아니다. 집단이든 개인이든 삶을 움직이는 근본적인 동인이자 가치를 의미한다. 즉, 여기서의 권력은 욕망, 충동, 생존 등과 같은 말이다. 따라서 ‘권력의지’는 현재의 가치를 극복하고 그것을 능가하는 가치를 추구하는 의지이다. 현재의 가치는 ‘나의 가치’가 될 수 있고, ‘타인의 가치’도 될 수 있다.
‘당신을 오직 어제의 당신하고만 비교하라.’조던 B. 피터슨의 <12가지 인생의 법칙> 중 네 번째 법칙이다. 인생에는 수많은 게임이 있어서 단 한 번의 게임으로는 인생의 성공과 실패가 결정되지 않기 때문에, 오늘의 ‘나’에게 유리하도록 게임을 선택하거나 아예 게임을 만들어나가라는 것이다. 권력의지와의 차이점은 타인을 가치 판단에 끌어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기 극복, 즉 성장에 대한 두 가지 관점은 ‘나’를 어떻게 성장시킬지, 가치 판단의 기준부터 찬찬히 돌아보게 한다.
 
HOME
‘말을 안 해도 편안할 거야 / 너만 있다면 다 내 집이 될 거야’ BTS는 이 곡에서 자신의 팬들을 안식처로 비유하여 팬들에 대한 고마움을 드러내고 있다. 차라투스트라가 탄생하기 전, 니체에게 안식처는 리하르트 바그너와 루 살로메였다. 니체의 첫 저작인 <비극의 탄생>에서는 바그너의 음악극이 그리스 비극 정신을 부활시켰다는 주장을 펼쳤을 정도로 그와 그의 음악에 의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니체는 루 살로메를 연인, 제자, 사상의 상속자로 생각했었다. 삶의 전부였던 것이다. 하지만 살로메에게 배신을 당하면서 광란 상태에 빠지고, 이 끔찍한 고통의 수렁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영감이 떠올랐다.
차라투스트라의 말주변은 거침이 없다. 초인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군중들을 ‘독파리 떼’로 비유하고, 평등을 설교하는 자들을 보고 ‘타란툴라’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둘 다 독을 가지고 있는 피해야 할 대상이다. 하지만 진정 독기는 차라투스트라, 즉 니체의 펜촉에 있었음을 이제 우리는 쉽게 알 수 있다. ‘나’를 찾는 여정에도 출발 동기와 종점을 다시금 환기해볼 필요가 있다.
 
Jamais Vu
이미 경험하거나 전에 알고 있던 것들이지만 마치 처음 경험하는 것처럼 생소하게 느껴지는 ‘미시감'을 뜻하는 프랑스어 ‘Jamais Vu’를 제목으로 한 이 곡은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다시 뛰고 계속 달릴 것이라는 내용을 담은 노래다. 미시감의 반의어인 ‘기시감’을 뜻하는 프랑스어가 ‘Deja Vu’라는 것을 알면 훨씬 친숙하게 보일 것이다. 특히 기시감은 영원회귀 사상과도 흡사한 부분이 있다. 이 사상에 따르면 기시감은 영원히 반복되는 삶에 기인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어느 난쟁이에게 영원회귀를 이와 같이 비유하기도 했다.
어느 성문을 기점으로 그 문 양쪽에 길이 있다. 둘 다 영원으로 이어진 길이다. 이 때, 이 성문의 이름은 ‘순간’이다. 이 순간은 지나온 영원을 거쳐 도착한 곳이고, 미래의 영원과도 이어진다. 영원히 반복되는 삶을 일차원으로 표현한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이 순간에 충실해야 함을 깨달을 수 있다. 미래를 살기 위해 달려도 도착하는 곳은 ‘순간’이라는 성문이다. 또한 지나온 과거가 있기 때문에 그 성문에 위치할 수 있다. ‘나’는 지금 미래만을 바라보는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되짚어볼 때다.
 
Dionysus
마지막 수록곡은 노래와 춤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싶다는 내용을 담은 노래다. 춤은 중력에 저항하는 몸의 예술로, 차라투스트라에게 중력의 정신은 곧 ‘악령’이다. 우리를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외부의 틀에 자신을 끼워 맞추려는 움직임은 중력의 정신이다. 약점까지도 사랑하고 자기의 모든 것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중력으로부터 자유롭다. ‘가벼워져서 새가 되기를 바라는 자는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만 한다.’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비극의 탄생>에서는 우리의 삶을 이끌어가는 두 신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아폴론과 디오니소스. 아폴론적인 것이 ‘사물을 똑바로 인식하는 빛, 환상’을 가리킨다면,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때로는 필요한 도취와 망각의 상태, 축제’를 가리킨다. 그래서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어린아이의 단계이며, 차라투스트라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다. ‘나’를 찾는 여정의 끝에서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자세를 알려주고 있다. 한 마디로 아모르파티(Amor fati), 즉 내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다이너마이트는 폭발물로서의 정체성도 가지고 있지만, 이것을 발명한 노벨에 의해서 인류의 복지에 공헌한 사람에게 수여하는‘노벨상’이 제정되는 데 공이 큰 발명품이기도 하다. 니체의 철학이 ‘다이너마이트’라고 불리는 것도 파괴적인 성격뿐만이 아니라 인류의 발전에 현재까지도 큰 영향력과 공헌도를 떨치는 점을 높게 샀기 때문이 아닐까.
차라투스트라의 동행은 여기까지다.